때늦은 후기
행복했던 2012년 겨울의 기억을 이제야 글로 남기니 나도 참 게으르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당시의 나를 두고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보이는데 얼굴은 좋아보인다' 라고 말하던, 그 겨울.
새로이 영화제 자원활동가를 준비하면서 지난 영화제 활동들을 찾아보는데 또다시 맘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쓰는 때 늦은 글.
방학 마지막주, 고민 끝에 서울독립영화제 자원활동가에 지원했다.
면접날 사무국의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로망은 충족되고 환상은 무너지는 경험과 함께 서독제가 시작.
어색했던 데일리팀원들과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로 손꼽힐만큼 애틋(?)한 사이가 되었고
이젠 어느 영화제를 가도 마주치는 서독제 사람들과의 인연도 얻게 되었다.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압구정 CGV 투썸플레이스의 문.
사무국이었던 이른바 소(지섭)룸이 있던 곳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 머물렀다.
이곳에선 전도연, 정우성, 홍상수 감독님을 비롯 엄청난 유명인사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구경하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노트북에 코박고 기사쓰고, GV정리하느라고 정작 눈 앞에 있는 전도연도 알아보지 못했다만.
무튼 자활들 사이에서 오늘은 누가 왔었네 이야기를 하다보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허다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쁘던 영화제가 끝날 무렵, 기록팀 자활 수진이와 눈이 오던 날 만든 서독제 눈사람 :)
섹션 마다 모두 한차례 로테이션이 끝나 데일리팀은 그나마 숨돌릴 여유가 생겼던 듯 하다.
서독제는 한 섹션을 주말을 기점으로 두번정도 상영을 하는데 데일리팀의 경우 처음 상영에 감독님과 배우들을 뵙고
인터뷰를 마치거나 GV가 그 때 대부분 몰려있기 때문에 그 이후 상영부턴 다른 팀의 일을 돕는 시간도 많았다.
상영팀, 운영팀 프로그램팀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일했던 기억.
덕분에 다른 팀 자활들과도 친해질 기회가 많았다.
영화제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프로그램북과 함께 자원활동가증서에 받았던 감독님들의 싸인.
사람이 좋으셔서 오히려 놀랐던(?) 양익준 감독님과 나의 뉴 히어로 이광국 감독님.
여담으로 프로그램북에 받았던 감독님들과 배우님들의 싸인엔 각자 개성이 너무 잘 드러나있어 지금도 보면서 웃곤한다.
<로맨스 조>를 정말 인상깊게 보고,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라하다보니 자연스레 접하게 된 이광국 감독님.
그 전까진 <로맨스 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면 영화제 이후엔 그 분 가치관에 반해 진짜 팬이 되었다.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내 꿈을 격려해주시던 감독님의 말씀 덕분에 이번 학기 대본 창작 수업도 이것저것 들었는데.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 그래도 시나리오는 계속 써봐야지. 책도 영화도 많이 많이.
마지막 데일리와 편집 후기.
영화제가 끝났다. 설레임 때문에 혹은 원고 마감때문에 새우던 밤들도 끝났다. 다음 주면 기말고사인데 큰 일이다. 영화제를 떠나기 싫어서건 시험을 보기 싫어서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와닿지가 않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영화제 기간 동안 사람도 많이 만났고 매일 똑같던 일상을 돌아볼 기회도 많났다.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사들, 녹취록들을 보고 있자면 둘도 없이 뿌듯하기도 하다. 상영관 안에 앉아서 보던 스크린을 밖에서 데일리팀으로써 만나보니 색다른 경험. 영화제를 통해 만난 좋은 인연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날 인디스페이스로 독립영화 발전 세미나 취재를 간 탓에 지하철에서 급하게 써내린 후기. 좀 더 성의 있게 쓸걸하고 후회도.
영화제 마지막날에도 데일리팀은 마지막 데일리를 발행하기위해 뒷풀이에 늦었다.
데일리팀은 영화제 동안 있었던 수없는 술자리에 제 시간에 도착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매일 저녁 데드라인이었으니 집에 가도 일의 연속. 그래도 좋았다 :)
서독제를 통해 얻은 건 정말 많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인연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이들과의 시간들이 값지게 남아있다.
감독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되야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도 거듭 생각해봤고.
내가 뭘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지만,
그래도 서독제를 기점으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는 확실히 깨달았으니 그걸로 일단은 족하다.